사회생활문서
조선시대
조선시대 사회생활 조선시대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약 자료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억울한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했을까요? 사회생활관은 다양한 사회조직의 기록, 청원이나 민원 자료와 증명서, 소송에서 패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다짐, 공동의 관심사를 의논하고 합의한 후 작성한 소지, 서원이나 향교 등에서 보낸 통지문인 통문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을축년 11월 이조영(李祖榮)이 장종욱(張宗郁)에게서 논값을 추심해달라고 관에 청원한 소지
- 을축년 김대림이 도산서원에 백호 윤휴의 문집간행에 관한 회합일자를 알린 통문(通文)
- 을축년 윤선도의 호노 순충이 겸순찰사에게 상전댁 개간지의 입안 발급을 청한 의송
- 을해년 7월 서후의 백성인 하수해·하룡천 등이 관부에 제방을 수리하는 일로 올린 소지.
- 을해년에 정주두가 신랑측에 혼례일을 알리고 옷치수를 적어달라고 보낸 혼서
- 의성향교에서 임술년에 오봉, 회병 두 선생의 향사에 관해 각 가문에 보낸 통문
- 이국호(李國鎬)가 1914년에 이벽호(李璧鎬)에게 전하는 편지
- 이기호가 병오년에 외삼촌에게 보낸 편지
- 이만각이 1862년에 고산(高山)에게 학문적 교유를 위해 보낸 편지
- 이만각이 1867년에 고산에게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