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가족생활문서

가족생활문서

조선시대
나암 이문흥의 후손들이 세운 나암정 상량문
위로 이동 |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
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나암 이문흥의 후손들이 세운 나암정 상량문
문서종류 상량문 발급년도 연도미상
발급자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나암(羅菴) 이문흥(李文興)의 후손들이 세운 나암정(蘿庵亭)의 상량문(上樑文)이다.

상량문 첫머리에는 이문흥(1423-1503)에 대해 간략하게 기술하였다. 이문흥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질보(質甫), 호는 나암(羅菴)이며, 146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의 직임을 맡아 16년간 유생교육에 몰두하고 79세에 사직을 청하여 조정을 떠났다. 용궁(龍宮)의 기천서원(箕川書院)에 향사(享祀)되었다.

상량문은 공사(工師)가 들보를 올릴 때 하는 말이다. 반드시 길한 날을 받아서 상량을 하며, 장인의 우두머리가 면(麪)을 들보에다 던지면서 상량문을 외우며 축원한다. 그 글의 첫머리와 끝 부분은 모두 변려체(騈儷體)을 사용하고 중간에는 각각 3구씩으로 된 시 여섯 수를 써서 동서남북과 상하에 배당시키며, 마지막에 축원하는 내용을 담는다.

마지막에는 이 글이 선적(先蹟) 가운데에서 기록한 것을 베껴 바치는 것이라 원본과 다른 곳이 있을 수 있다고 하고, 조목에 따라 표점하여 봐 줄 것을 청하면서 상대방의 가르침대로 교정하겠다는 추기가 있다.

소품보기 미리보기 팝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