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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가족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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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김흥락이 지은 이세사 묘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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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김흥락이 지은 이세사 묘갈명
문서종류 묘갈명 발급년도 1882-1883
발급자 김흥락(金興洛)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김흥락(金興洛: 1827-1899)이 지은 숭록대부 행 지중추부사(崇祿大夫行知中樞府事) 이세사(李世師)의 묘갈명(墓碣銘)이다.

이 묘갈명은 김흥락이 지은 것으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1842-1910)가 승지로 있을 때 부탁했다는 내용을 볼 때 1882년~1883년 사이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김흥락의 『서산선생문집(西山先生文集)』에도 실려 있는데, 이 문서에는 첨가하거나 수정한 흔적들이 보이는 것으로 볼 때 초고인 듯하다.

이세사(1694-?1754)의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성백(聖伯), 호는 만화헌(晩花軒)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7대손이다. 문서 첫머리에는 이세사가 지중추부사로 있으면서 탕평(蕩平)의 논의를 타파할 것을 청한 상소를 올렸다는 내용과 조정에 18일 밖에 나간 적이 없으며, 70세에 통정대부에 오르고 그 뒤 일곱 번 승진하여 숭록대부까지 오른 것을 언급하였다. 마지막에 승지 이만도가 이세사의 유사(遺事)를 가지고 묘갈명을 부탁하기에 삼가 행장에 의거하여 서술하고 명을 짓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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