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생활문서
조선시대
1870년에 예조에서 배상열의 추증을 아뢴 계목
문서명 | 1870년에 예조에서 배상열의 추증을 아뢴 계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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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종류 | 계목 | 발급년도 | 1870 |
발급자 | 예조(禮曹) | 소장처 | 한국국학진흥원 |
1870년(高宗 7) 8월 6일에 예조에서 배상열(裵相說)의 추증을 아뢴 계목(啓目)이다.
경상도 유생들이 괴담(槐潭) 배상열(1759-1789)의 효행과 학덕을 추모하고 지역 선현으로 제향하기 위해 녹동리사(鹿洞里社)를 세우고 괴담의 추증을 위해 계속해서 상서(上書)를 했는데, 이 문서는 중앙에서 이루어진 최종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예조에서 아뢰기까지의 순서를 보면, 먼저 경상도 진사(進士) 권승하(權承夏) 등이 경상감사에게 상언(上言)하고, 경상감사는 예조에 이러한 내용을 계본(啓本)으로 아뢰었다. 예조에서는 이를 계목으로 임금에게 아뢰고, 승정원에서는 그 문서 출납을 담당하여 “회계(回啓)한 대로 시행하라”는 임금의 전교를 전해주었다. 당시 예조에서는 판서와 정랑이, 승정원에서는 동부승지가 이 문서 행정을 담당하였다.
배상열은 본관이 흥해(興海), 자는 군필(君弼), 호는 괴담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라 효행이 깊고 깊이 공부하였으며, 이상정(李象靖, 1711-1781)에게서 성리학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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