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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정치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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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871년에 이산두(李山斗)의 증시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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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1871년에 이산두(李山斗)의 증시 교지
문서종류 교지 발급년도 1871
발급자 국왕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871년(고종 8)에 정헌대부 지중추부사 이산두(李山斗)에게 시호를 내려주는 교지이다.

시호는 청헌(淸憲)으로 그 시호를 내려준 의미는 ‘피원불의왈 청(避遠不義曰 淸), 행선가기왈 헌(行善可紀曰 憲)’이라 쓰여 있다. 즉, 의롭지 못한 것을 피하고 멀리하니 청(淸)이며, 행동이 선하여 본보기가 될 만하니 헌(憲)을 쓴다는 뜻이다.

이산두(1680-1772)는 전의이씨로 병조정랑·예조정랑·공조참판 등을 지낸 인물이다. 평생 청빈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며, 소산 이광정이 쓴 행장 등에서 그의 이러한 행적을 엿볼 수 있다.

이 증시교지는 이산두가 세상을 떠난 후 100년만에 받은 것인데, 청헌이라는 시호 역시 청빈했던 그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종 8년에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시호를 내려주었는데, 그 기사는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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