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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가족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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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650년에 류원지가 쓴 풍산류씨 대종가 중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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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1650년에 류원지가 쓴 풍산류씨 대종가 중수기
문서종류 중수기 발급년도 1650
발급자 류원지(柳元之)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650년(孝宗 1)에 류원지(柳元之)가 쓴 풍산류씨(豊山柳氏) 대종가(大宗家)의 중수기(重修記)이다.

풍산류씨 대종가는 양진당(養眞堂)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306호로 지정되었다. 내용을 보면, 대종가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소실되었는데, 원주목사(原州牧使)를 지낸 류운룡(柳雲龍: 1539-1601)이 서쪽에서부터 별실(別室)을 짓고, 그 아들인 처사 류원직(柳元直: 1578-1629)이 두 차례 중수작업을 하였고, 1650년 류세철(柳世哲: 1627-1681)에 이르러 동상(東床)을 건립하게 된다.

공역 과정에 대해, 이미 공사를 할 만한 준비가 되고 때가 이르러 더 이상 공사를 미룰 수 없다고 하고, 공사에 사용할 목재를 월산(月山)에서 구했다고 하였다. 10월 14일에 터를 닦고 19일에 기둥을 세우고 29일에 상량(上樑)하였다고 하였다. 류세철의 문집인 『회당선생문집(悔堂先生文集)』에는 지금의 부엌, 온돌방, 대문간, 마굿간 등을 증축하였다고 나와 있다. 이 건물은 대원군(大院君)의 서원철폐령 때 류운룡을 모시던 화천서원(花川書院)이 훼천되면서 양진당에 있던 류운룡의 사당도 축소되었다.

중수기를 쓴 류원지(柳元之 : 1598∼1674)는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장경(長卿), 호는 졸재(拙齋)로, 류성룡(柳成龍)의 손자이다. 류세철과는 사제지간이며 7촌 숙질간이다. 저서로는 ����尊堯錄����, ����奉先雜儀����, ����拙齋集���� 등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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