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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사회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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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영천군 단애 영모재 유사와 회원들이 신유년에 정사성의 영모재 배식 등을 반대하며 돌린 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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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영천군 단애 영모재 유사와 회원들이 신유년에 정사성의 영모재 배식 등을 반대하며 돌린 통문
문서종류 통문 발급년도 1921
발급자 영천군 단애 영모재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이 문서는 신유년(1921) 2월 10일 영천군(永川郡) 단애(丹崖) 영모재(永慕齋) 유사와 회원들이 돌린 통문이다.

영모재는 금성대군(錦城大君)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 처형되었던 충장공(忠莊公) 대전(大田) 이보흠(李甫欽) 묘 앞에 위치한 재실로, 영모재 유사와 회원들은 이보흠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정씨들이 충장공의 행적인데도 마치 자기들의 정사성(鄭司成)의 공인 것처럼 속여, 계유정난을 추종하였던 정사성을 단종과 사육신 등의 위패를 모신 숙모전(肅慕殿)에 배식(配食)하고 동학지(東鶴誌)에 속여 기재하려 하니, 정사성의 위패를 숙모전에서 축출하고 동학지의 오류를 바로잡자며, 이 통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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