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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정치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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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만력 41년 약포(藥圃) 정탁(鄭琢)의 위성공신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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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만력 41년 약포(藥圃) 정탁(鄭琢)의 위성공신교서
문서종류 교서 발급년도 1613
발급자 국왕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만력41년(1613, 광해 5) 3월에 약포(藥圃) 정탁(鄭琢)에게 갈충진성동덕찬모좌운위성공신(竭忠盡誠同德贊謨佐運衛聖功臣)을 녹훈하고 내려준 공신교서이다.

위성공신이란 임진왜란시 광해군을 따라 이천, 전주까지 호종하고 광해군의 활동을 보좌했던 이들에게 내린 공신호로서 당시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정탁은 위성공신 1등으로 녹훈되었다. 교서의 맨 앞에는 ‘충근정량호성공신(忠勤貞亮扈聖功臣)’이라는 공신호와 이하 관직명이 나열되어 있고, 2행 하단에 ‘갈충…’의 공신호를 내린다는 내용이 쓰여져 있다.

즉, 정탁이 이미 1604년(선조 37)에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에 봉해져 있었으므로 앞에 명기한 것은 호성공신호이고, 이번에 내려주는 것이 위성공신호이다. 정탁의 이름은 공신 1등의 최흥원(崔興源)·윤두수(尹斗壽)에 이어 세 번째로 올라 있다.

공신 1등·2등·3등의 명단을 기록한 후 끝에 날짜와 함께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 있다.

이 공신교서는 청주정씨가의 다른 고문서·전적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러나 위성공신은 광해군이 폐위된 후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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