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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정치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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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영천의 유생 서윤보(徐綸輔) 등이 지산 조호익(曺好益)의 시호를 내려달라는 뜻으로 올린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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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영천의 유생 서윤보(徐綸輔) 등이 지산 조호익(曺好益)의 시호를 내려달라는 뜻으로 올린 상소
문서종류 상소 발급년도 미상
발급자 서윤보(徐綸輔) 외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영천(永川)의 유생 서윤보(徐綸輔) 등이 지산 조호익(曺好益)의 시호를 내려달라는 뜻으로 올린 상소로 지산조선생청시소(芝山曺先生請諡疏)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먼저 상소에서는 선조(宣祖) 때의 명신 장현광·정구·정경세 등이 도학(道學)의 정수로서 시호를 받았고, 곽재우·정세아·권응수 등이 충훈(忠勳)의 공로로 시호를 받았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고증이조참판(故贈吏曹參判) 조호익 역시 선조 조의 명신으로 도학으로 정구·장현광과 이름을 나란히 했고, 충의로도 곽재우·정세아 등과 같은 시기에 공훈을 세운 점을 상세히 열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호익에게만 유독 반시(頒諡)의 은전이 누락되었으므로 부디 시호를 내려달라는 뜻을 간곡히 표현하고 있다. 이에 시호를 내려 주셔서 열조(列朝)의 숭도상충(崇道尙忠)의 본의를 보여주시고, 상소를 올리는 유생들의 존현모덕(尊賢慕德)의 본의를 알아주실 것을 청하였다.

지산 조호익(1545-1609)은 본관이 창녕(昌寧)이며, 자는 사우(士友)이고 지산(芝山)은 그의 호이다. 퇴계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임진왜란시 소모관(召募官)으로 의병을 모아 활약하였고, 형조정랑이 된 후 1593년 평양전투에도 공을 세웠다. 그뒤 안주부사·정주목사 등을 역임하였고, 후에 이조판서 겸 동지의금부사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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