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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춘 징계를 위한 사천유림 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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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이경춘 징계를 위한 사천유림 통문
문서종류 통지문 발급년도 1931
발급자 泗川儒林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931년 이경춘(李敬春)이라는 사람에 대한 징계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사천유림들이 돌린 통문이다.

1930년 본대도회(本臺道會) 석상에서 함의제(涵義齊) 최관(崔瓘)을 구계서원(龜溪書院)에 추배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1931년 이경춘이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첨배하는 척하면서 최관의 위패를 축출하고자 했고, 이를 이루지 못하자, 이경춘은 '사천군의 유림은 최연국(崔演國)의 명령만 쫓는다, 더러운 집안을 찔러죽이자'는 등의 문건을 돌렸다.
당시 최연국이 사천지역을 대표하는 친일파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경춘 및 사천지역 사람들은 친일파의 조상을 서원에 모시는 것 자체와 그것을 따르는 사천 유림을 참을 수 없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경춘의 인적사항을 알려주는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사천유림이 발송한 이 통문을 안동의 유시경이 받아 보관하여 남아있게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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