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생활문서
조선시대
1864년 계당 류주목이 퇴산 고사원의 산소를 수호하기 위한 퇴동정사를 중건하며 지은 중건 기문
문서명 | 1864년 계당 류주목이 퇴산 고사원의 산소를 수호하기 위한 퇴동정사를 중건하며 지은 중건 기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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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종류 | 기문 | 발급년도 | 1864 |
발급자 | 류주목(柳疇睦) | 소장처 | 한국 국학 진흥원 |
조선 초에 예문학(藝文學)을 지낸퇴산(退山)고사원(高士原)이 돌아가시자후손들이 힘을 모아산소를 수호하기 위해 지은 퇴동재사(退洞齊舍)가 세월이 오래되어 허물어졌다. 이에 후손들이 다시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그리고 일의 전말을 가지고 류주목(柳疇睦)에게 찾아가 지은 중건기문이다.
특히 퇴(退)는 선조의 사업(事業)이 이 한 글자에 들어있기에 후손들이 잊지 않기 위해 중건을 하게 되었다.이는 참으로 귀감이 될 만한 일이기에 지었다.
고사원(高士原, ?~?)은 본관이 개성(開城)이며 호가 퇴산(退山)이다.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태종 때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을 제수 받았다.안성에서 용궁현(龍宮縣)으로 이거하여 후손이 세거하게 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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