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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경제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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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응태처(李應鮐妻) 정조이[鄭召史]가 1629년에 작성한 노비 방매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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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이응태처(李應鮐妻) 정조이[鄭召史]가 1629년에 작성한 노비 방매문기
문서종류 노비 발급년도 1629
발급자 이응태처 정조이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629년(인조 7) 11월 24일, 이응태처 정조이[鄭召史]가 학세(鶴世)에게 노비 1명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문기이다.

정조이[鄭召史]가 방매한 노비는 남편이 매득하여 사환해 오던 비 옥취(玉吹)의 2소생 비 옥녀(玉女)로 기해생(己亥生)이며, 저화 4천장 가격에 5승목 40필을 받았다.

방매 사유는 자신이 자식도 없이 사는 과부로 현재 살 길이 막막할 뿐만 아니라 죽고 나면 관곽(棺槨)을 마련할 방도도 없으므로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재주(財主)가 여성이므로 우장(右掌)을 그려 넣었으며, 뒤에 자신의 방매 사실이 진실임을 다짐하는 초사(招辭)가 점련되어 있다.

소사(召史)는 양인 이하 신분의 여자에게 붙이는 일종의 직역으로 성(姓) 아래에 붙이며 ‘조리’ 또는 ‘조이’로 읽는다. 재주(財主)가 그려넣은 수장(手掌)은 대개 부인과 천류가 사용한 일종의 압(押)으로 손바닥을 펴서 그 모양을 그려 넣었다. 여자는 주로 우장, 남자는 좌장을 했으나 원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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