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문서
조선시대
계묘(癸卯)년과 정사(丁巳)년에 작성된 시용동안(時用洞案)
문서명 | 계묘(癸卯)년과 정사(丁巳)년에 작성된 시용동안(時用洞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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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종류 | 동안(洞案) | 발급년도 | 계묘(癸卯)년 10월 |
발급자 | 미상 | 소장처 | 한국국학진흥원 |
계묘년 10월과 정사년 4월 28일에 작성된 동안으로 표제는 ‘시용동안(時用洞案)’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정사년에 다시 동안을 작성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정사년 동안의 앞에 수록된 서문에 나타나 있다. 이 서문은 박신지(朴身之)가 ‘인량동동안중수서(仁良洞洞案重修序)’라는 제목으로 기술하였다.
인촌(仁村)의 상․하리는 예전에는 두 개의 동으로 나뉘어져 있었다가 두 동중(洞中)이 폐하여진지 수십년이 되었는데, 정사년에 이르러 양리(兩里)의 부로(父老)가 서로 협의하여 하나의 동으로 합하고 동안을 개수하였다는 것이다.
이 동안을 통해 향촌사회 동계의 결성과 운영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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