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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가족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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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830년에 의성김씨 김용의 시호를 청하기 위해 작성한 소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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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1830년에 의성김씨 김용의 시호를 청하기 위해 작성한 소임록
문서종류 소임록 발급년도 1830
발급자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830년 3월 21일에 의성김씨(義城金氏) 운천(雲川) 김용(金涌)의 시호(諡號)를 청하기 위해 작성된 문건이다.

김용의 시호를 청하는 데 필요한 직임을 부여하고 있는데, 시호를 청하는 소수(疏首)는 유학(幼學) 김병탁(金秉鐸)이고 그 뒤에 소청집사(疏廳執事)들을 기록하였다. 그 역할과 담당자수를 보면, 장의(掌議)가 2명, 소색(疏色)이 4명, 상소를 짓는 제소(製疏)가 10명, 상소를 쓰는 사소(寫疏)가 7명, 택소(擇疏) 1명, 도청(都廳) 5명, 관행(管行) 5명, 배소(陪疏) 36명, 직월(直月) 4명이다. 김용의 시호를 청하기 위해 유사로서 참가한 사람이 모두 75명으로, 시호를 청하기 위한 제반 절차들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김용(1557-1620)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도원(道源), 호는 운천(雲川)으로, 김수일(金守一)의 아들이고, 김성일(金誠一)의 조카이다. 1590년 증광시 병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내외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운천집(雲川集)』·『운천호종일기(雲川扈從日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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