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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사회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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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계해년 8월에 이달중, 이학중 형제가 김교리의 위문장에 답하는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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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계해년 8월에 이달중, 이학중 형제가 김교리의 위문장에 답하는 간찰
문서종류 간찰 발급년도 계해(癸亥)년
발급자 이달중(李達中)과 이학중(李學中)형제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위문장을 받았다. 귀양가서 지내고 있는 형편이 괜찮으시다니 위로된다. 저희들은 죽지 않고 오늘에 이르러 궤석(几席)을 이미 거두었다.

곡읍(哭泣)할 곳이 없어졌으니 천지가 망망하여 의지할 곳이 없다. 그대 어머니께서 멀리서 만사[緘辭]를 보내주시고 향촉(香燭)을 붙이셨다. 묘실(廟室)에서 잃는 것은 예(禮)에 편치 않아 묘(墓)앞에서 제수를 올려 놓고 읽으려는데 예의(禮意)에 어떠한가? 당신 따님의 병이 깊어 걱정했는데 근래에 조금 나았다 하니 마음이 안심된다. 종길(宗吉)은 비로소 입학하였다.

둘째 아드님[二郞]이 병으로 하산[霞山]에 체류한다기에 듣고는 민망하더니 증세가 나아져서 본가(本家)에 돌아갔다고 하니 매우 다행이다. 김 양숙[金陽叔]은 칠순의 나이에 부모님의 상을 만났으니 안타깝게 한다는 등등 상중에 있는 상주가 상대방이 보낸 위문장에 대하여 주변의 안부를 겸하여 쓴 감사의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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