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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문화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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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502년부터 1554년까지 이현보가 올린 상소와 관련 기사들을 모아놓은 성책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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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1502년부터 1554년까지 이현보가 올린 상소와 관련 기사들을 모아놓은 성책 자료
문서종류 성책 발급년도 1502
발급자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이현보(李賢輔)가 1502년(燕山君 8) 10월 28일부터 1554년(明宗 9)년 2월 25일까지 관직 생활을 하면서 올린 상소와 이현보 관련 글들을 모아놓은 성책(成冊) 자료이다.

모두 32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기사는 1502년 10월 28일에 이현보(李賢輔)가 기사관(記事官)의 신분으로 사관(史官)이 정청(政廳)에 참여하는 일로 아뢰었으나 거부당한 내용이며, 2년 뒤인 1504년 4월 20일에는 정언(正言)의 신분으로 세자의 진독(進讀)을 분명하게 하지 않은 세자빈객(世子賓客) 홍자아(洪自阿)를 체직시켜줄 것을 청하였다가 이현보도 제 때에 아뢰지 않았다는 죄를 물어 안동(安東)으로 유배된 내용이 있다.

연산군 이후 중종(中宗), 인종(仁宗) 시대에는 주로 당시 현안이나 정치의 올바른 방법 등을 상소하였으며, 명종조(明宗朝)에는 나이가 많은 것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고 있다.

마지막 기록은 1554년 이현보의 나이 88세의 나이에 올린 전문(箋文)으로, 올라오기를 청하는 명종의 청을 병으로 사양하면서 시정(時政)에 대해 간하고 있다.

이현보의 관직 전반을 개괄할 수 있고 정치 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저자는 미상이나 영천이씨 농암종택에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집안 후손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현보(1467-1555)는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비중(棐中), 호는 농암(聾巖)·설빈옹(雪鬢翁), 시호는 효절(孝節)이다. 1498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농암문집(聾巖文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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