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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사회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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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592년에 이숙량이 의병 가담을 촉구하기 위해 작성한 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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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1592년에 이숙량이 의병 가담을 촉구하기 위해 작성한 통문
문서종류 통문 발급년도 1592
발급자 이숙량(李叔樑)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592년(宣祖 25)에 진사(進士) 분천(汾川) 이숙량(李叔樑)이 의병 가담을 촉구하기 위해 예안(禮安) 일대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이숙량(1519-1592)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대용(大用), 호는 매암(梅巖)으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아들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안동(安東) 일대에도 의병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이 통문은 그런 와중에 작성된 것이다.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이 5월 4일 초유사(招諭使)로 임명되어 각 지역에 초유문을 발송하였는데, 이에 고무되어 안동에서도 김해(金垓)를 안동 열읍(列邑) 향병(鄕兵) 대장(大將)으로 추대하고, 이숙량에게 통문을 지어 인근 마을에 보내 의병에 많이 가담하게 하였다.

안동지역에서의 의병은 6월 11일 예안에서 시작되어 15일 용궁(龍宮)에서 왜군과 격전을 벌였다. 문서 말미에는 이 글은 영천군(永川郡) 화북면(華北面) 횡계동(橫溪洞) 사수옹(虒叟翁) 7대손 정재목(鄭載穆)의 집안에 전해진 것을 베껴쓴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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