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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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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671년에 기계현의 이여약 등 선행을 한 사람과 행적을 기록한 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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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1671년에 기계현의 이여약 등 선행을 한 사람과 행적을 기록한 선적
문서종류 도서 발급년도 1671
발급자 약임(約任) 소장처 경주 양월 경주이씨종가

1671년((顯宗 12)에 기계현(杞溪縣)의 이여약(李汝葯) 등 선행을 한 사람과 행적을 기록한 선적(善籍)이다.

이 문서에는 양반 2명과 노비 4명 등 6명의 선행이 적혀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여약의 경우 제사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서모(庶母)의 상을 당해서는 지나치게 슬퍼하였으며, 은어를 잡다가 죽은 동생 생각으로 지금까지도 은어를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정선(李挺善)은 모친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숙모를 자기 모친처럼 받들었다고 하였다. 사노(私奴)인 황말동(黃唜同)과 최잉질동(崔芿叱同)은 상전을 잘 모셨고, 사비(私婢) 춘학(春䳽)과 사비(寺婢) 단진(丹進)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수절하여 향리에서 칭친하고 있다고 선적에 올리는 이유를 밝혔다. 이 문서는 12월 26일 약임(約任) 서모(徐某)가 작성하였다.

이정선(1622-1697)은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호는 삼원당(三願堂)으로, 기계현에 살았다. 효성이 지극하고 학행이 뛰어났으며 세인들이 숭정처사(崇禎處士)라 불렀다.

이 문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01-183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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