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생활문서
조선시대

조선시대 가족생활 조선시대의 주민등록등본은 어땠을까요? 재산을 분배할 때 남녀간 차이가 있었을까요? 가족생활관은 혼인과 장례와 관련된 문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제문, 묘소의 위치를 기록한 묘도, 재산분배와 관련된 별급문기, 족보 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통 시대의 호적인 호구단자를 보면서 개인과 가족, 문중에 대한 근·현대의 인식 차이, 생활 방식의 차이 등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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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에 유호영이 도산서원에 보낸 제수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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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계당 류주목이 퇴산 고사원의 산소를 수호하기 위한 퇴동정사를 중건하며 지은 중건 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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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에 이만도가 아들의 관례를 위해 작성한 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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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탁암 김도화가 지은 화음 은성호의 묘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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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에 김홍락이 지은 전홍교 묘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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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에 작성한 현(玄), 훈(纁) 두 가지 색깔의 옷감이 기재된 물목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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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에 권사응이 외조부에게 올린 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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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 조씨가 장손 이우홍에게 노비를 증여한 별급문기(別給文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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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정씨가 질부 이씨에게 노비를 증여한 별급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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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姜鎔)이 이만도(李晩燾)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