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문서
조선시대

조선시대 사회생활 조선시대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약 자료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억울한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했을까요? 사회생활관은 다양한 사회조직의 기록, 청원이나 민원 자료와 증명서, 소송에서 패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다짐, 공동의 관심사를 의논하고 합의한 후 작성한 소지, 서원이나 향교 등에서 보낸 통지문인 통문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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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에 최심건이 창절사에 안부를 묻고 3냥을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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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에 안동부에서 법흥 고성이씨가에 청원 내용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으로 작성해 준 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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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류이좌 류철조 등이 예천성주에게 올리는 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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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에 사빈도회소 김진탁 등이 배상열의 위패를 모시는 일에 찬성한다는 내용으로 보낸 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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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에 청송부가 임응호에게 발급해 준 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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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에 이병운이 성주에게 올린 발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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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에 유치명이 숙부의 대상을 맞은 이를 위로하며 보낸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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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에 안동 진사 김창수 등이 배상열의 학행에 대해 추증의 은전을 내려줄 것을 청한 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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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에 김규진이 원파의 사돈에게 안부를 묻고자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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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안동군에서 권진기에게 승소판결을 내린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