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생활문서
조선시대
조선시대 가족생활 조선시대의 주민등록등본은 어땠을까요? 재산을 분배할 때 남녀간 차이가 있었을까요? 가족생활관은 혼인과 장례와 관련된 문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제문, 묘소의 위치를 기록한 묘도, 재산분배와 관련된 별급문기, 족보 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통 시대의 호적인 호구단자를 보면서 개인과 가족, 문중에 대한 근·현대의 인식 차이, 생활 방식의 차이 등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1675년 영해부에 거주하는 이지형이 관아로 올린 호구단자
- 1677년에 승려 경휘가 조카 박기종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작성한 분재기
- 1678년 예안에서 통덕랑을 지내고 있는 김만주가 예안현에 제출한 호구단자
- 1682년에 윤이석이 안진사댁에 아들의 혼사문제로 보낸 혼서
- 1684년에 김태중(金泰重)이 작성한 별급문기
- 1684년에 이구징이 작성한 호구단자
- 1685년에 이분이 선성김씨가에 손자의 혼사 문제로 보낸 혼서
- 1686년에 배종이가 딸에게 논을 상속하면서 작성한 문서
- 1692년에 이천이 5대조 묘갈 수선 고유제에 지어 바친 축문
- 1709년 이계진이 두 명의 자식에게 재산을 나누어 준 분급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