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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사회생활문서

사회생활문서

조선시대
하석중 등이 안동부에 올린 상서의 초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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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하석중 등이 안동부에 올린 상서의 초본
문서종류 상서 발급년도 연도미상
발급자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안동의 유학 河錫中(1758-1837) 등이 자신들의 선조 河緯地(1412-1456)의 가계를 바로잡고 본관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자 연명으로 청원한 上書이다.

자신들의 선조는 단종조의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렬공의 12세 嗣孫이라 칭하고, 11대조 龜童 이후 그 가계의 변화와 지속 내용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즉 하위지가 사육신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11대조 귀동을 봉화 외가의 금진사댁에서 양육하여 가계를 단절하지 않고 이어가게 된 과정을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장황한 설명을 요약하면 충렬공의 관향을 丹溪로 써 왔는데 가계가 잔폐해진 이후 진주로 불리우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바르게 고쳐줄 것을 청원한 것이다.

이 문서는 가계를 변무하는 上書를 올리기에 앞서 그 초고본으로서 작성한 것이다. 곳곳에 보이는 수정 및 가필 흔적이 이 문기가 草本임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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