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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가족생활문서

가족생활문서

조선시대
1733년에 신유한이 수급자 미상에게 작성해 준 수안김공 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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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1733년에 신유한이 수급자 미상에게 작성해 준 수안김공 묘지명
문서종류 행장 발급년도 1733
발급자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733년(영조 9)에 申維翰(1671-1752)이 지은 수안김공의 묘지명이다. 묘지명의 주인공은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나 본관이 수안이며, 8대조 金成鼎을 비롯 군자감봉사를 지낸 증조 金龍瑞 등 名祖를 많이 둔 인물이다.

묘지명에 따르면, 아버지는 金時霔인데 그는 진성이씨 군자감첨정 李璘의 딸을 妻로 취하여 公을 낳았다. 그런 연고로 영덕에 세거한 수안김씨 집안이지만, 公은 외가인 예안 溫溪에서 태어났다. 그때가 1614년(인조 19)이며, 이후 공의 행적을 나이별로 상세히 적어 마치 연보를 보는 듯하다.

특히 학문과 재예에 능하여 유명 학자들을 私塾한 이야기가 많이 묘사되어 있다. 영조 원년에 85세의 나이로 통정대부로 陞資하고 부호군으로 승직하기까지 사환 이력도 소개하고 있다.

撰者인 신유한은 당시 통정대부 행평해군수 강릉진관병마동첨절제사였으며, 본관을 영해의 고명인 禮州로 적고 있어 영해신씨임을 알 수 있다. 또 묘지명을 작성한 시기를 ‘숭정 갑신후 90년 계축’으로 써서 유학자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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