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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정치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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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761년에 김상열이 작성한 시권의 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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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1761년에 김상열이 작성한 시권의 명지
문서종류 명지 발급년도 1761
발급자 김상열(金相說)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761년(英祖 37) 김상열(金相說)이 42세 때에 작성한 과거 시험 답안지의 명지(名紙)이다.

이 문서는 과거 응시자가 관에 제출하여 확인받는 명지로, 시험지 오른쪽 윗부분에 본인의 관직, 이름, 나이, 본관, 거주지와 사조(四祖) 등을 쓴다.

김상열은 당시 유학(幼學)의 신분으로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안동(安東)에 살았다. 부는 통덕랑(通德郎) 정하(挺河), 생부는 복하(福河), 조부는 종사랑(從仕郎) 세건(世鍵), 증조부는 학달(學達), 외조부는 통훈대부 행 영해도호부사 안동진관병마첨절제사(通訓大夫行寧海都護府使安東鎭管兵馬僉節制使) 채헌징(蔡獻徵)이다.

왼쪽에 잘려나간 부분은 시권 부분이고, 이 문서는 과거 응시자가 자신의 신원사항을 확인받기 위해 관에 제출한 것으로 시권을 작성한 뒤에는 명지 부분을 잘라 따로 보관하기 때문에 이처럼 잘려나간 흔적이 있는 것이다. 뒷면의 연접 부위에 ‘육귀(六歸)’가 보이는데 이는 수험번호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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