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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정치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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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615년에 신해익이 중국 차관에 대해 아뢴 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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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1615년에 신해익이 중국 차관에 대해 아뢴 계목
문서종류 계목 발급년도 1615
발급자 신해익(慎海翊)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615년(光海君 7) 10월 5일에 예조좌랑 신해익(慎海翊)이 중국 차관(差官) 문제로 올린 계목(啓目)이다.

이 문서는 신해익이 예조좌랑의 신분으로 올린 계목이다. 문서가 일부 훼손되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비가 많이 내리니 중국 차관이 관왕묘(關王廟)에 가는 것을 만류하라는 것과 차관이 오래 머물러 강매(强賣)하기 때문에 물가가 치솟아 상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승정원에서 올린 계사(啓辭)로 인해 임금이 조속히 처리하라는 전교를 내렸고, 이 계목은 전교에 대한 처리 결과 보고라 할 수 있다. 말을 잘하는 역관을 별도로 정해 이들 차관을 달래고 만약 차관이 궁궐에 오려고 하면 접반관(接伴官)과 차비역관(差備譯官)이 잘 주선하여 임의대로 출입하지 말게 하라는 의견을 올렸는데 그대로 따른다는 전교를 내렸다. 예조좌랑 신해익 좌측 아래쪽에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 윤홍보(尹弘輔)의 이름이 보이는데 예빈시가 빈객의 연향 등을 담당하기 때문에 계목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신해익(1592-1616)의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중거(仲擧), 호는 병은(病隱)으로 우의정 이행(李荇)의 외손이다. 1613년에 22세로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조좌랑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25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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