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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가족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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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880년에 이만도가 아들의 관례를 위해 작성한 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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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1880년에 이만도가 아들의 관례를 위해 작성한 홀기
문서종류 홀기 발급년도 1880
발급자 이만도(李晩燾)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880년(高宗 17) 2월 7일에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가 아들의 관례(冠禮)를 위해 작성한 관례홀기(冠禮笏記)이다.

표제인 ‘관례홀기’ 아래에는 영천이씨 농암종택(永川李氏聾巖宗宅)의 후손이 부기한 글이 있는데, 이 홀기는 향산이 직접 쓴 글로 자신의 증조고인 독은공(獨隱公) 이희조(李羲肇: 1841-1920)에게 보낸 것이라고 하였다.

관례를 치루기 위한 제반 절차를 관례 치루기 3일전에 사당(祠堂)에 고하는 것부터 당일 자(字)를 받기까지 상세히 기록하였다.

문서 말미에는 이만도가 쓴 편지가 있는데, 자신의 아들인 중업(中業: 1863-1921)의 관례를 2월 9일에 치루고자 하니 왕림하여 가르침을 달라는 내용이다. 관례 절차를 상세하게 기록하여 마치 관례 치루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는 것만 같다.

이만도는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단식으로 순국하였으며, 이중업도 1920년 한국 유림대표로서 중국 손문(孫文) 등에게 보내는 독립청원서 3통을 가지고 출국하려다가 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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