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생활문서
조선시대
1782년에 이휘지가 노량진사육신묘갈명에 쓴 서문
문서명 | 1782년에 이휘지가 노량진사육신묘갈명에 쓴 서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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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종류 | 묘갈명 | 발급년도 | 1782 |
발급자 | 이휘지(李徽之) | 소장처 | 한국국학진흥원 |
1782년(正祖 6)에 노량진 사육신 묘역 안에 신도비(神道碑)를 세우면서 쓴 묘비명(墓碑銘)이다.
이 문서는 정조의 명에 의해 사육신의 신도비가 건립되고 비문으로 작성된 글이다. 비명은 태학사(太學士) 조관빈(趙觀彬: 1691-1757)이 짓고, 당(唐) 나라 안진경(安眞卿)의 집자(集字)로 되어 있으며, 조관빈의 비명과 이휘지(李徽之: 1715-1785)의 서문(序文)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휘지는 1747년 이후 나라의 은전과 비를 세우게 된 전말을 서술한다고 하였는데, 1747년은 조관빈이 비명을 지은 해로 그 뒤의 사실을 서술한 것이다. 서문을 통해 조관빈이 비명을 지은 것은 1747년이고, 1758년은 단종(端宗)이 복위된 지 60년이 되었으며, 1770년에 영조(英祖)는 사육신에게 시호를 내릴 것을 명하고, 박팽년(朴彭年)과 하위지(河緯地)의 마을을 정표(旌表)하였으며, 1778년에는 민절사(愍節祠)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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