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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사회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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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806년에 최심건이 창절사에 안부를 묻고 3냥을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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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1806년에 최심건이 창절사에 안부를 묻고 3냥을 보낸 편지
문서종류 간찰 발급년도 1806
발급자 최심건(崔心健)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806년(純祖 6) 8월 13일에 칠원현감(柒原縣監) 최심건(崔心健)이 창절사(彰節祠)에 안부를 묻고 3냥을 보내는 편지이다.

여름에 편지를 받았는데 지역은 떨어져있고 인편은 드물어 아직까지 답장을 못했다며 송구하다고 하며, 가을 날씨에 창절사의 여러 어른들은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풍토병으로 3년을 고생하는데 아직 낫지 않은데다가 흉년으로 보이는 곳마다 백성들이 걱정된다고 하였다. 창절사에서 경제적 도움을 요청한 듯한데 이 지역의 재력이 좋지 않아 죄송할 뿐이라며 3냥을 보낸다고 하였다.

이 편지가 진주하씨(晉州河氏) 지봉주손가(砥峯胄孫家)에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하위지(河緯地)와 관련된 일로 창절사에서 요청이 있었던 듯하다.

최심건(1764-1832)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정칙(正則), 호는 우리(迂里)로, 179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1805년 윤6월 25일에 칠원현감에 임명되었다. 이 편지는 칠원현감 재임시에 보낸 것이다. 창철사는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 등 10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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