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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사회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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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895년에 이중업이 의거를 독려하기 위해 돌린 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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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1895년에 이중업이 의거를 독려하기 위해 돌린 격문
문서종류 격문 발급년도 1895
발급자 이중업(李中業)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895년(高宗 32)에 기암(起巖) 이중업(李中業)이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후에 안동(安東)과 예안(禮安) 유림들에게 돌린 격문(檄文)이다.

이 글은 이중업(1863-1921)의 『기암유고(起巖遺稿)』에 수록되어 있다. 이중업은 1895년 8월 20일에 일본인에게 명성황후가 시해 당하자 김도현(金道鉉) 의사와 비밀리에 원수 갚을 계획을 세우고 이 당교격문(唐橋檄文)을 지어 안동과 예안의 유림들에게 돌리고 의거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삼천리 인재의 고장이며 오백년 의리의 종가인 영남(嶺南)에서 의리를 떨쳐 일어나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 10명 흉신(凶臣)을 죽이고, 국모(國母)를 시해한 일본인들에게 원수를 갚자고 독려한 내용이다.

이중업은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1842-1910)의 아들이다. 이만도는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단식으로 순국하였으며, 이중업도 1920년 한국 유림대표로서 중국 손문(孫文) 등에게 보내는 독립청원서 3통을 가지고 출국하려다가 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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