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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사회생활문서

사회생활문서

조선시대
1858년에 안동 진사 김창수 등이 배상열의 학행에 대해 추증의 은전을 내려줄 것을 청한 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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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1858년에 안동 진사 김창수 등이 배상열의 학행에 대해 추증의 은전을 내려줄 것을 청한 상서
문서종류 상서 발급년도 1858
발급자 김창수(金昌銖) 등 105명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858년(哲宗 9) 2월에 안동(安東) 진사(進士) 김창수(金昌銖) 등 경북 여러 지역의 유생 105명이 암행어사에게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의 학행을 보고하고 추증(追贈)의 은전을 내려 줄 것을 청한 상서(上書)이다.

상서는 소지(所志)의 일종으로, 여러 사람이 연명해서 올리며 주로 효행, 절행, 학행에 대한 포장(褒裝) 청원이나 산송에 관한 내용이 많다.

상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괴담(1759-1789)은 고 판서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裴尙志)의 후예이고, 선조조의 명신 배삼익(裴三益)의 동생인 배삼근(裴三根)의 7대손으로, 어려서부터 남달라 상수학(象數學)․천문․지리 등에 정통하였으며, 일찍이 산천을 측량하고 일경대(日景臺)를 지어 천상(天象)을 관측하고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었으며, 1780년 이후에는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에 뜻을 두고 경전 및 사서(四書) 연구에 전념하여 모든 학문에 두루 통달하였으나 31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고 하였다.

이들 유생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관에 끊임없이 괴담의 뛰어난 학행에 대해 추증의 은전을 관에 청하였지만 아직까지 임금에게 아뢰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이제 괴담이 죽은 지 60년이 지나 그의 학행이 드러나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다시 암행어사에게 이러한 사실을 임금에게 아뢰어 추증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에 대해 암행어서는 10일 문서를 접수하여 괴담의 뛰어난 학행을 들으니 매우 공경스럽지만 임금에게 아뢰는 사체가 중하니 더욱 공의(公儀)를 신중히 하라는 제사(題辭)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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