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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정치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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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635에 인조가 김령을 사세자시강원보덕에 임명하고 빨리 올라 올 것을 명한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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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1635에 인조가 김령을 사세자시강원보덕에 임명하고 빨리 올라 올 것을 명한 유지
문서종류 유지 발급년도 1635
발급자 승정원(承政院)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635년(仁祖 13) 4월 4일에 승정원(承政院)에서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에 새로 임명된 김령(金坽)에게 서연(書筵)에 입번(入番)하는 일이 급하니 빨리 올라올 것을 독촉한 유지(有旨)이다.

세자시강원은 조선시대에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된 관서이고, 보덕은 정3품직이다. 유지는 승정원에서 담당승지가 왕명을 받아 그 내용을 직접 작성․서사하여 명을 받는 자에게 전달하는 문서를 말한다. 유지의 문서 형식은 담당승지의 간단한 직함과 성을 쓴 뒤에 착명(着名)을 하고, 연호 위에 ‘승정원인(承政院印)’을 찍는다. 표면에는 이 문서를 받는 자만이 열어볼 수 있다는 의미의 ‘개탁(開拆)’이 쓰여 있다. 이 문서의 출납은 우부승지 최연(崔葕)이 담당하였다.

김령(1577-1641)은 본관이 광산(光山), 자는 자준(子峻), 호는 계암(溪巖)으로, 김부륜(金富倫)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17세의 나이로 유성룡(柳成龍)의 막하로 자진 종군하였다. 1612년에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618년 인목대비(仁穆大妃)가 폐위된 뒤에는 벼슬하지 않고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1689년에 도승지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며, 저서로는 『계암집(溪巖集)』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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