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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가족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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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792년에 조운도가 권신도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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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1792년에 조운도가 권신도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
문서종류 제문 발급년도 1792
발급자 조운도(趙運道)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792년(正祖 16)에 월산노인(月山老人) 조운도(趙運道)가 권신도(權身度)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권신도(1768-1791)는 자가 성위(聖爲), 호가 육유재(六有齋)이고, 창설(蒼雪) 권두경(權斗經: 1654-1725)의 4세손이고, 권사호(權思浩: 1733-1806)의 아들로 24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나오지 않는데 같은 해에 지어진 이충록(李忠祿: 1729-1795)의 제문을 토대로 작성연대를 추정하였다.

먼저 재주와 뜻을 지니고 오래 사는 것은 어렵다고 하면서 32세에 요절한 공자(孔子)의 제자 안자(顔子)를 언급하며 어렸을 때부터 진(晉)나라 때 대문장인 반악(潘岳)과 육기(陸機)의 재주를 타고났다고 권신도의 문장을 칭찬하였다. 이런 재주를 지니고도 24세에 요절한 젊은 문장가의 죽음을 그를 알든 모르든 모두들 애통해하고 있다고 하며 자신도 그의 죽음을 듣고 마음이 쪼개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고 깊은 애도를 전했다.

제문을 쓴 조운도(1718-1796)는 자가 성제(聖際)이고 호가 월하(月下)이며, 조덕린(趙德鄰)의 손자이자 조희당(趙喜堂)의 아들이다. 조운도는 조부 조덕린이 당쟁에 희생되는 것을 보고 벼슬할 뜻을 포기하고 평생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는 데에 전념하였으며 시문집인 『월하문집(月下文集)』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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