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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사회생활문서

사회생활문서

조선시대
1631년에 이천경 등 향안 입록 대상자 83인을 수록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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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1631년에 이천경 등 향안 입록 대상자 83인을 수록한 문서
문서종류 향안 발급년도 1631
발급자 경주부(慶州府) 향회(鄕會) 소장처 경주 양월 경주이씨종가

1631년(仁祖 9) 7월에 경주부(慶州府)의 향안(鄕案) 입록(入錄) 대상자를 전서(傳書)한 향안이다.

이 문서는 원래 1601년(宣祖 34) 2월에 만들어진 것을 30년이 지난 이 때에 와서 전서한 것으로 성책(成冊) 고문서이다. 이 향안에는 모두 83인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들의 신분과 이름을 차례로 쓰고 있다. 문서에는 전직(前職)과 현직(現職)을 막론하고 관직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관직에 진출하지 못한 유학(幼學) 등 신분이 양반인 사람들이 수록되어 있다.

향안은 지방의 양반들이 자신들의 결속을 강화하고 신분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향안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은 향중에서 입의(立議) 등을 만들어 제한하였다. 이들은 이 향안을 토대로 결성되는 향회(鄕會)를 통해 마을과 이민(吏民)을 통제했다.

전 참판(參判) 최진립(崔震立: 1568-1636)은 본관이 경주(慶州)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결사대 수백 명을 인솔하여 서생포(西生浦)의 적을 물리치고 양호(楊鎬)·권율(權慄)과 함께 도산(島山)에서 대승하였다. 또 1636년에는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맞아 청나라 군사와 싸우다 용인 험천(險川)에 이르러 전사하였다. 1637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1647년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저서로는 『정무공기실(貞武公紀實』 2권이 있다.

이 문서는 보물 1472-2-9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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