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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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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696년에 향현사 화재로 인한 중수 등의 논의를 가을로 미루자는 내용의 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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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1696년에 향현사 화재로 인한 중수 등의 논의를 가을로 미루자는 내용의 답통
문서종류 통문 발급년도 1696
발급자 서악서원(西岳書院) 소장처 경주 양월 경주이씨종가

1696년(肅宗 22) 4월에 서악서원(西岳書院)에서 향현사(鄕賢祠)의 화재에 대한 논의를 가을로 미루자는 내용으로 향사당(鄕射堂)에 보낸 답통(答通)이다.

이 문서는 향현사의 화재 발생에 따른 후속 조치를 향사당에 통문(通文)의 형식으로 답한 것이다. 서악서원의 향현사에서 생각지도 않은 화재가 발생하여 모두들 애통해하고 있다는 말로 서두를 시작하였다. 화재를 회록(回祿)의 변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회록이 바로 불을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화재의 후속조치로서 곧바로 의견을 모아 향현사를 중건해야겠지만 지금은 흉년으로 굶는 백성들을 구제하기에도 힘든 상황이니, 가을에 다시 의견을 모아 처리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 답통을 쓴 사람은 임인중(任仁重)과 이덕표(李德標) 등인데, 임인중(1645-1721)은 1681년 식년시(式年試) 3등으로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이덕표(1664-1745)는 1699년 식년시 3등으로 진사에 합격하였고 『우와선생집(寓窩先生集)』을 남겼다.

이 문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01-170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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