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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교육생활문서

교육생활문서

조선시대
1829년부터 1867년까지 구강서원의 운영에 든 물품과 그동안의 임원 등을 기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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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1829년부터 1867년까지 구강서원의 운영에 든 물품과 그동안의 임원 등을 기록한 책
문서종류 고왕록 발급년도 1829
발급자 구강서원(龜岡書院) 소장처 경주 양월 경주이씨종가

1889년(高宗 26)에 경주(慶州) 구강서원(龜岡書院)에서 1829년 9월부터 1867년 6월까지 서원 운영에 든 물품과 수리 내역, 서원의 임원들을 기록한 책이다.

표지의 “고왕록(考往錄)”은 지난 일을 참고하기 위해 기록해놓은 기록물이라는 뜻이다. 구강서원(龜岡書院)은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정과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경주에 있다. 여기에는 1829년 4월부터 1867년 6월까지 서원을 관리하는데 들어간 물품과 그간의 임원들을 시간순으로 기록해 놓았다. 그 외에도 서원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 마련이 어렵자 후손들이 각각 일정 비용을 댄 것, 서원 아래에 있는 집들이 서원의 원할한 운영을 위해 완문(完文)을 발급받아 각종 잡역(雜役)을 면제받게 된 것 등도 기록하였는데, 시기별 구강서원에서 소용된 물품과 비용, 주요 사건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완문은 관에서 향교(鄕校), 서원(․書院), 결사(結社), 개인 등에게 발급하는 문서로서, 어떠한 사실의 확인 또는 권리나 특전의 인정을 위한 확인서를 말한다.

이제현(1287-1367)은 고려의 시인·성리학자이다. 호는 익재(益齋)·실재(實齋)·역옹(櫟翁),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1301년(충렬왕 27) 15세에 성균시에 장원, 이어 대과에 합격했으며, 1319년 원나라에 갔다가 충선왕이 모함을 받고 유배되자 그 부당함을 원나라에 밝혀 1323년 풀려나오게 했다. 1357년 문하시중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학문과 저술에 몰두했다. 저서로 『익재난고(益齋亂藁)』 10권과 『역옹패설(櫟翁稗說)』2권이 전한다. 경주의 구강서원과 금천의 도산서원에 제향되었고, 공민왕 묘정에 배향되었다.

이 책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01-240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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