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사회생활문서

사회생활문서

조선시대
1627년에 경주 동면과 남면에 부과한 과중한 병영 시초의 일을 개선해 달라고 청한 상서
위로 이동 |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
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1627년에 경주 동면과 남면에 부과한 과중한 병영 시초의 일을 개선해 달라고 청한 상서
문서종류 상서 발급년도 1627
발급자 순찰사(巡察使) 소장처 경주 양월 경주이씨종가

1627년(仁祖 5)에 경상도 경주(慶州)에 사는 유학(幼學) 양후진(楊後震) 등 10명이 경주의 동면(東面)과 남면(南面)에 부과한 병영의 시탄(柴炭) 운송 등의 역이 과중하므로 다른 고을에도 분담시켜 그 역을 줄여달라고 요청한 상서(上書)이다.

상서는 소지의 일종으로 여러 사람이 연명해서 올리는 청원서나 소장이다. 주로 효행, 절행, 학행에 대한 포장(褒裝) 청원이나 산송에 관한 내용이 많다.

이 상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주 동면이 병영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애초 조역(朝驛) 이하 역(驛)에 시탄 운송 등의 일로 그 지역의 백성을 60명씩이나 배정하였다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자 다시 남면의 백성들에게도 일을 분담시켜 고통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병영에서 또다시 70명을 더 배정하여 모두 130명의 백성들이 병영의 일에 동원되어 견디기 힘드니, 시탄 등을 운송하기 어려운 먼 지역의 백성들에게는 시탄값을 내게 하고 가까운 지역 사람들에게는 경주부의 창고에 운송하도록 그 일을 분담시켜 동면과 남면의 백성들이 힘을 덜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대해 제사 첫머리에서 순찰사(巡察使)는 병영에서 정한 시탄의 양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제사의 일부만이 있고 뒷부분이 없어 어떠한 답을 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상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01-99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품보기 미리보기 팝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