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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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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보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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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보종기
문서종류 보종기 발급년도 1947
발급자 소장처 안동독립운동기념관

독립운동가 추산 권기일(權奇鎰, 1886-1920) 집안에 전하는 보종기이다.

보종기(保宗記)는 종가를 보호하거나 종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기록이다.

권기일은 안동권씨 부정공파 36세손으로 1886년 10월 5일 안동군 남후면 검암동에서 태어났다.
1912년 3월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920년 통화현 합니하 신흥무관학교에서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만주에서 태어난 권기일의 아들 권형순(權亨純, 1917-1997)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1945년 9월이다.
고국으로 돌아온 권형순은 일직면(一直面) 장사리(長沙里)의 종조부 권오상의 집 아래서 살았다.
만 2년이 지난 1947년 12월 초순에 종택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게 되었는데 이 보종기는 바로 이 때 만들어진 문서이다.

권오성(權五星) 등 5명이 발기하여 종가를 다시 세우기 위한 취지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모금을 하였는데, 23명이 모두 14,650원을 약속하였다.
자료상으로 모두 수금된 것은 아니나 많은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였고, 특히 권오운은 5천원이라는 거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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