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문서
조선시대
인당회뉴가
문서명 | 인당회뉴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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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종류 | 가사 | 발급년도 | 미상 |
발급자 | 미상 | 소장처 | 한국국학진흥원 |
<인당회뉴가>는 “무신년(戊申年) 사월(四月) 이십구일(二十九日)”에 “국만댁”이 지은 것이다.
여기서 무신년은 “평등셰월(平等歲月) 조흘시고 우니 여자(女子)해방(解放)이라”라는 구절로 볼 때, 1928년인 듯하다. 그리고 국만댁은 안동김씨가(安東金氏家)의 여식(女息)으로 그 아버지가 충청북도 외무주사․경상북도 내무주사를 지냈으며, 댁호인 ‘국만’도 안동 내 지명이다.
이 가사는 봄날에 무실(務實) 문중의 여인들이 친목을 도모하고자 회유(回遊)하였던 일을 소재로 하였으며, 행선지가 된 인당촌은 전주류씨(全州柳氏) 안동 입향조인 시정공(寺正公) 유성(柳城)과 그 아들인 기봉(岐峰) 유복기(柳復起)의 묘소와 재실(齋室)이 있는 곳이었다.
관련하여 가사에서도 선조들의 내력을 높여 서술하고 있다. 여인들은 윷놀이도 하며 “싱그너운 친목회(親睦會)”를 즐겼고, 다음 해 봄날의 모임을 기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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