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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문화생활문서

문화생활문서

조선시대
울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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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울해답
문서종류 가사 발급년도 1940
발급자 미상 소장처

이 가사는 서간도 평지 할마님이 지은 것으로 필재가 난필한데다가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이것을 베껴 김소인이 다시 쓴 듯하다.

말미에 경진(庚辰) 원월(元月) 초팔일(初八日)로 쓴 시기가 나와 있는데, 이것은 1940년 정월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씨’가 쓴 글에 대한 답가로 부인의 현덕과 자신이 무실 종택에 시집와 겪은 심회가 주를 이룬다. 전반부는 아씨가 지은이에게 보낸 글에 대한 감상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든지, 태임,태사를 본받고자 하는 마음 등이 담겨 있다. 중간 중간 아씨의 글을 부분 인용하고 있으며 ‘성현의 명훈이요 학문의 큰 덩어리’라 극찬하고 이런 예찬적 성향이 가사 전반에 흐른다.

말미에는 무실 유씨 집안에 시집와서 백발이 되도록 고락을 함께 하고 망국의 슬픔을 겪은 심회와 고향에 와서 회포를 푸는 부분, 자식을 만나러 먼 길을 갔다 온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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