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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경제생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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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590년에 이한(李漢)이 작성한 전답 상환문기(相換文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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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서정보 테이블
문서명 1590년에 이한(李漢)이 작성한 전답 상환문기(相換文記)
문서종류 상환문기 발급년도 1590
발급자 이한(李漢)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1590년(선조 23) 4월 초3일, 3촌 숙질(叔姪) 사이인 승(僧) 혜묵(惠黙)과 이한(李漢) 사이에 전답을 서로 교환하면서 작성한 문기이다.

문서의 발급자인 이한은 3촌 조카이며, 승 혜묵은 숙부로서, 이한은 자신이 소유한 금자전(禽字田) 20복(卜) 7두락지와 혜묵의 조상전래 전(田) 1석락지를 교환하는 것을 내용으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하지만 이한이 자신의 토지 이외에 단직령(單直令) 하나를 자원(自願)으로 함께 허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두 토지의 가치가 대등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직령이란 조선시대 무관들이 입던 웃옷을 말하는데, 고려시대부터 깃이 곧고 뻣뻣하며 소매가 넓은 것을 직령이라 일컬어왔다.

한편 전주(田主)인 이한은 좌촌(左寸)을 한 반면 필집은 사노(私奴) 신분인 최도치(崔都致)가 맡았는데 그는 수결(手決)을 하고 있어, 수결보다 수촌이 신분이 낮은 이들이 하는 것이라는 통념에 반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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