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문서
조선시대
조선시대 사회생활 조선시대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약 자료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억울한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했을까요? 사회생활관은 다양한 사회조직의 기록, 청원이나 민원 자료와 증명서, 소송에서 패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다짐, 공동의 관심사를 의논하고 합의한 후 작성한 소지, 서원이나 향교 등에서 보낸 통지문인 통문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조장(趙장<立+章>) 등 3인이 계묘년에 풍양조씨가 사람들에게 시조묘 가토(加土), 입갈(立碣)에 지원을 요청한 회문
- 조표연(趙豹然)이 1759년에 전적(典籍)으로 승진한 아버지를 경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주계서원 도유사, 재임, 회원들이 무술년(1838)에 병산서원에 학서 유이좌 선생의 예장을 고한 통문
- 직숙을 변경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조(趙) 좌랑(佐郞)의 편지
- 진사 이면우 등이 신축년에 경상도 관찰사에게 송월재 이시선 묘지기호의 잡역 면제를 청한 상서
- 진주 하씨(晉州河氏)가에서 방위에 따른 길흉을 기록한 문서
- 진주 하씨가의 하석중이 세계(世系) 변정(卞正)을 위해 작성한 상서초(上書草)
- 추금(秋金)이란 노비가 상전댁(上典宅)에 간곡히 부탁하는 편지
- 추원재 유사 금기익 등 3인이 1928년에 문중 사람들에게 회합일자를 알린 회문
- 태순이 이(李)군에게 선비의 자질을 가르쳐 주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