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문서
조선시대
조선시대 사회생활 조선시대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약 자료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억울한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했을까요? 사회생활관은 다양한 사회조직의 기록, 청원이나 민원 자료와 증명서, 소송에서 패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다짐, 공동의 관심사를 의논하고 합의한 후 작성한 소지, 서원이나 향교 등에서 보낸 통지문인 통문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김성탁이 갑오년에 과거 합격 여부를 점복한 문서
- 김응식(金應植)이 이무옹(李武雍)과 이별하면서 주었던 이별시
- 김익락(金益洛)이 무오년에 아들 병추(秉樞)의 재취에 관한 길흉 부분에 대해점복한 문서
- 김제행(金濟行)이 정사년에 옥사에 있는 부친의 건강과 방면 여부를 점복한 문서
- 김종말 등이 계축년에 족보 개수를 위해 풍산김씨 군위 종중에 보낸 통문
- 김진행(金晉行)이 계해년에 유배된 아버지의 방면 여부에 관해 점복한 문서
- 남세환, 남교승 등이 기묘년에 영해부사에게 채전(債錢) 추심을 청원한 소지
- 내재종제(內再從弟) 만(萬)이 을유년에 조(趙)생원(生員)에게 쓴 편지
- 노 증율이 계해년에투장(偸葬)한 부친의 묘를 기한내에 굴이(掘移)하겠다고 다짐한 문서
- 단계, 입석, 진주 안계 지역의 사림 명단